
소비가 아닌 문안의 계절
세상이 온통 꽃의 개화와 잎의 번성에 마음을 빼앗길 때, 이 마을의 양조장은 오히려 깊은 수렁 같은 정적 속에 잠깁니다. 봄이 왔다고 해서, 술이 기별을 보냈다고 해서 곧장 잔을 기울이는 법은 없습니다. 이 마을에서 봄은 뜨겁게 태워버리는 소비의 계절이 아니라, 생명이 건네는 안부를 가만히 살피는 '확인의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술독 안에서는 이미 눈부신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투명하게 차오른 빛깔이 "이제 나갈 때가 되었다"고 아우성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변화를 성급히 가로채지 않았습니다. 며칠 더 두고, 한 번 더 지켜보는 것. 그것은 술을 마시기 전, 계절이 술의 뼈대에 충분히 정착할 수 있도록 자신의 조급함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는 의식입니다.
서두르는 생(生)에게 불친절한 시간
이곳의 술은 속도를 앞세우는 이에게 결코 다정한 낯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억지로 시간을 당겨 마신 술은 혀끝에서 정제되지 않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기 마련입니다. 술이 제 스스로 숨을 고르고, 봄의 기운과 완벽하게 섞일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 그것은 술을 망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예우이자, 계절의 영혼을 온전히 소유하려는 가장 고결한 인내입니다.
| 노트속메모 “봄은 확인의 계절이지, 소비의 계절이 아니다.” “마시지 않는 선택이 술을 망치지 않는다.” “한 박자 늦은 느림이, 짧은 봄을 영원으로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
마시지 않는 선택은 언제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멈춤의 시간 동안 술은 부패가 아닌 숙성으로, 단순한 액체에서 계절의 결정체로 거듭납니다. 서두르지 않았기에 비로소 남게 되는 그 무엇을 위해, 우리는 다시 한번 술독의 어깨를 덮어줍니다.
느림이 선물하는 영원한 봄
이 마을에서 술은 늘 한 박자 늦게 도착합니다. 타인이 이미 봄의 장례를 치를 때, 이곳 사람들은 이제야 비로소 첫 잔을 마주합니다. 그 느림은 역설적으로 봄을 가장 길게 만듭니다. 이미 흘러간 계절을 술잔 속에 박제하여 천천히 음미하기 때문입니다.
잔을 들기 전까지의 그 고독한 기다림이 술의 운명을 결정짓듯, 우리 삶의 봄날도 조금은 더디게 흘러가도 좋지 않을까요. 서둘러 삼켜버리지 않아도 봄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멈춰 서서 지켜봐 줄 때, 봄은 더 깊고 지극한 향기로 우리 생의 가장 낮은 곳까지 머물러 줄 것입니다.

[나의 노트]
서두름은 언제나 본질을 가립니다. 이번 봄에는 '마시는 손'보다 '지켜보는 눈'에 더 많은 무게를 실었습니다. 술이 익어가는 속도에 우리의 심장 박동을 맞출 때, 비로소 시간은 우리를 추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봄날이, 당신의 사랑이 부디 서두름에 멍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